더운 여름, 냉수가 지겨울 때 ‘냉침차’는 어때요?
- 홍차나 녹차는 떫은맛이 나서 싫지만 티를 즐기고 싶은 사람
- 카페인 때문에 커피와 차를 ‘오전 한정’으로 즐기는 사람
- 무더운 올 여름, 갈증을 자주 느끼는 사람
‘냉침’이 뭔지도 몰랐던 ‘티알못’ 에디터가 어느 날 냉침차의 매력에 빠졌다. 뜨거운 물에 우릴 때와 달리 떫지 않고 부드러운 향미가 진하게 우러나는 냉침차. 여름날 열기에 뜨거워진 에디터의 머릿속까지 시원하게 치유해 준 테라피였다.

최근까지 나는 차를 마시지 않았다. 차를 싫어해서가 아니다. 내가 우린 차가 영 맛이 없었기 때문이다. 분명히 카페에서 마신 그 티백을 사왔는데, 집에서 직접 우린 차는 티 마스터가 우려준 그 ‘훌륭한 맛’이 아니었다. 물 온도를 제대로 맞추지 못해서인지, 아니면 잎을 뜨거운 물에 너무 오래 우린 탓인지, 어쨌든 내가 우려낸 차는 매번 떫은맛이 났다.
한번은 떫은맛을 내지 않기 위해 물 온도를 낮추고 2분 이내에 찻잎을 우려내 봤다. 싱거웠다. 잎차에 밴 향미를 제대로 우려내지 못한 것 같아 아쉬움이 컸다. ‘돼지 목에 진주 목걸이’가 이럴 때 쓰는 말이었나? 훌륭한 찻잎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스스로에게 실망했고, 언제부턴가 더 이상 차를 사지 않게 되었다.
그렇지, 차는 전문가가 우려주는 거지!
니들이 냉침을 알어?
차에 다시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냉침차’를 알게 되면서부터다. “선배, 이거 냉침차야”라며 아이스 티를 건네는 후배에게 “냉침이 뭐야?”라고 물을 정도로 무식했지만, 음료를 맛본 순간 한 가지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그가 건넨 냉침차는 너무나 향기롭고 맛있었다!
후배가 냉침한 것은 쿠스미티의 엑스퓨레 애딕트였다. 달콤쌉싸름한 자몽 향이 펼쳐지면서 레몬그라스, 녹차, 마테차의 깊은 풍미가 느껴졌다. 냉침차는 말 그대로 찬물에 티백을 담가 우려내는 것. 티를 냉침하는 방법은 무척 간단했다. 500ml 생수병에 티백을 2개 넣고 1~2시간 냉장고에 넣어두면 끝이라는 것!

곧바로 쿠팡 앱을 열어 쿠스미티의 엑스퓨레 애딕트와 에디션 덴마크의 그린재스민티를 주문했다. 그리고 받자마자 냉침을 시작했다. 후배가 얘기한 대로 2시간 만에 차가 완벽하게 우려졌다. 엑스퓨레 애딕트는 역시 자몽 향이 매력적이었고, 그린재스민티는 녹차, 재스민, 페퍼민트가 절묘하게 배합되어 산뜻했다. 무엇보다 향미가 진한데도 전혀 떫지 않았다. 얼음컵에 냉침차를 넣어 마시니 머릿속까지 시원해지는 느낌!
그날 이후 나는 매일 냉침차를 한 잔 이상 마신다. 처음과 달라진 것이 있다면 냉침을 하는 방법이다. 후배는 생수 500ml에 티백을 2개 넣고 1~2시간 우린 냉침차를 즐겼지만, 나는 생수 500ml에 티백을 1개 넣고 냉장고에서 8시간 우린 냉침차를 즐겨 마신다. 티백 2개를 우린 냉침차가 너무 진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은은하고 깊은 향기의 차를 얼음컵에 따라 마시는 기분이란! 더운 날 시원하게 마시는 냉침차는 힐링이자 치유였다. 아, 나는 왜 냉침차를 이제야 알았단 말인가! 냉침차를 몰랐던 시간이 야속하게 느껴졌다.

카페인에 약한 사람이라면 냉침차!
신기하게도 냉침차에서는 떫은맛이 나지 않았다. 유레카! 똑같은 찻잎인데 왜 냉침차는 떫은맛이 나지 않을까? 오히려 맛이 부드럽게 느껴지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차 음료 창작 대회 ‘보성 티 마스터 컵’에서 입상한 티 크리에이터이자 티 라이프 큐레이션 플랫폼 ‘시티피플’(@citea_people) 에디터로 활동하는 ‘자영’(@jayeong_inde)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차 맛을 내는 대표적인 세 가지 성분이 있는데, 쓴맛을 내는 카페인과 떫은맛을 내는 카테킨, 그리고 단맛을 내는 테아닌이에요. 그중 카페인과 카테킨은 고온에서 잘 우러나기 때문에 뜨거운 물로 추출한 차나 커피에서 쓰고 떫은맛을 더 많이 느끼게 됩니다. 하지만 테아닌은 냉수에서도 잘 녹기 때문에 냉침차를 마시면 상대적으로 단맛을 더 느끼게 돼요.”

“냉침차는 카페인에 약한 사람도 마실 수 있다”, “냉침차는 잎차가 오래 우려지면서 풍미가 더욱 조화롭다”는 유튜버들의 얘기는 틀린 말이 아니었다.
냉침차는 뜨거운 물에 차를 우려서 얼음을 섞는 ‘급랭 티’와도 맛이 다르다. 자영은 이렇게 말한다. “급랭 티는 뜨거운 상태에서 느껴졌던 다양한 향미가 대부분 살아 있어 부드러운 단맛을 지닌 냉침차에 비해 풍미가 조금 거친 느낌이 들 수 있습니다.”
티 에이드부터 아이스 밀크티까지, 무한한 냉침 월드
알고 보니 세상엔 정말 다양한 냉침법이 존재했다. 여름에는 탄산수나 사이다에 찻잎을 냉침해서 즐기는 사람도 있었다. 또 진이나 보드카에 냉침차를 넣어 하이볼로 즐기거나, 베지밀B에 홍차 티백 5개를 넣어 아이스 밀크티를 만들어 먹는다고도 했다.

냉침의 세계에 입문한 김에 나도 티 에이드부터 아이스 밀크티까지 다양한 냉침 음료를 경험해 보기로 했다.
첫 번째 도전은 탄산수에 티백을 냉침하는 티 에이드. 어디선가 ‘탄산수에 티백을 넣고 거꾸로 세워 냉침하면 탄산이 덜 빠진다’는 글을 읽고 따라해 봤다. 물론 비교해 보기 위해 탄산수를 2개 준비해 하나는 뚜껑을 위로, 다른 하나는 뚜껑을 아래로 세워 냉침했다.
탄산수에 넣어 냉침하면서 가장 걱정했던 건 ‘8시간 동안 탄산이 다 빠지는 건 아닐까?’였다. 탄산 빠진 탄산수를 무슨 맛으로 먹는단 말인가! 하지만 기우였다. 뚜껑을 아래로 해 거꾸로 세운 탄산수는 탄산이 거의 빠지지 않은 그대로였다. 아니, 오히려 탄산이 너무 강렬해 내 입맛에는 맞지 않았다. 톡 쏘는 맛의 홍차라니! 그렇지만 기분 전환이 되는 강렬한 풍미의 홍차를 선호한다면 분명 마음에 드는 사람도 있지 않을까!

반면 두 번째 도전인 아이스 밀크티는 취향 저격이었다. “차가운 우유에는 찻잎이 절대 우려지지 않으니 뜨거운 물에 3분 우린 다음 우유에 넣으세요”라고 조언하는 유튜버가 꽤 많았지만, 나는 요즘 SNS 세상에서 유행하는 그대로, 차가운 베지밀B에 홍차 티백을 5개 넣어 냉장고에서 냉침했다. 걱정과 달리 티백은 차가운 베지밀B에도 제대로 우려졌다. 진하디진한 아이스 밀크티 간단히 완성! 홍차의 쌉싸름한 맛과 베지밀B의 고소한 단맛이 어우러져 맛이 훌륭했다. 집에서 만든 아이스 밀크티지만, 굳이 카페에 가지 않아도 될 만큼 맛나다.
냉침차로 티의 세계를 열었습니다
본격적으로 냉침차를 즐기게 되면서 요즘은 티백 대신 거름망에 찻잎을 냉침해 마시곤 한다. 하리오의 냉침 보틀은 찻잎을 걸러주는 거름망이 내부에 있어 찻잎을 티백에 소분하지 않아도 되니 편리하다. 찻잎을 냉침하면서 티백을 사용하지 않아 훨씬 저렴한 가격에 차를 즐길 수 있는 것이 장점이다.
그리고 냉침 음료를 만들어 먹으면서 한 가지 더 달라진 점이 있다. 즐겨 마시는 차 종류가 다양해진 것. 냉침차를 마시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는 자몽 같은 과일 향이 가미된 차를 주로 즐겼지만, 점차 홍차나 녹차, 호지차 등 다양한 차를 가까이하게 되었다. 덕분에 오래전 선물 받아 묵혀두었던 다양한 찻잎을 꺼내 마시는 재미가 쏠쏠하다. 냉침차는 오래된 찻잎을 우려도 맛이 잘 살아난다고 해서 기쁜 마음으로 만들어 마시고 있다.

냉침차를 반복해서 마시면서 나의 차 취향도 알게 되었다. 알고 보니 나는 단맛이 가미된 차보다 홍차, 녹차 같은 깔끔한 맛을 좋아하는 취향이었다. ‘이렇게 차를 마시다 보면 카테킨의 떫은맛도 사랑하게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요즘 냉침 홍차에 빠져 있다.
이렇게 나도 차를 즐기는 ‘우아한 여자’가 되어가고 있다. 냉침을 통해 티 월드에 발을 들였다고 할까. 커피를 자제하니 새로운 세계가 펼쳐졌다. 여전히 커피를 사랑하지만, 매일 두 잔 이상 마시던 습관에서는 벗어났다. 오늘도 커피 한 잔, 냉침차 한 잔 마시면서 ‘커피 인간’이자 ‘차 인간’으로 이중 생활을 즐기고 있다.
Editor’s Pick)에디터의 지극히 사적인 냉침티 추천 3
- 포숑(Fauchon)의 ‘라 뽐므(La Pomme)’
사과 향이 물씬 풍기는 블랙 티. 실론 홍차 맛과 사과 향이 절묘하게 어우러지는 차로, 맛과 향이 진한 가향 티라 냉침으로 빠르게 우려진다.
- 포트넘앤메이슨(Fortnum & Mason)의 ‘브렉퍼스트 블렌드(Breakfast Blend)’
클래식한 맛의 홍차를 즐기고 싶을 땐 포트넘앤메이슨의 브렉퍼스트 티를 냉침한다.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홍차 맛이 산뜻하다. 강한 베르가모트 향이 나는 얼그레이의 향미를 부담스러워하는 에디터도 아삼과 실론 등이 배합된 브렉퍼스트 블렌드는 좋아한다.
- 쿠스미티(Kusmi Tea)의 ‘엑스퓨레 애딕트(Expure Addict)’
에디터가 처음으로 맛본 냉침티. 산뜻한 자몽 향이 매력적인 티로, 과일 향이 풍부하지만 달지 않고 은은한 허브 향이 특징이다.




